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미 폭스 (문단 편집) === 보스턴 레드삭스 === [[파일:external/boston.sportsthenandnow.com/foxx_williams530h.jpg]] (보스턴으로 이적한 뒤의 폭스. 오른쪽은 [[테드 윌리엄스]]) 레드삭스로 이적하고 나서도 폭스의 기량은 여전했다. 폭스는 이적 첫 해 타율 .338 41홈런 143타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타자의 위용을 자랑했다. 그러나 레드삭스는 8개 팀중 6위에 머물렀다. 1937년 폭스는 두통을 겪기 시작하며 성적이 다소 하락한 모습을 보였다. 타율 .285 36홈런과 127타점을 기록하며 전년도보다 다소 성적이 하락한 모습을 보였다. [[파일:external/a.espncdn.com/bos_boshrgallery_03_340.jpg]] 1938년, 폭스는 전년도의 부진을 만회 하듯이 타율 .349(1위) 50홈런(2위) 175타점(1위)을 기록하며 다시 MVP를 차지하였다. 1939년에도 폭스는 맹타를 휘둘렀다. 비록 9월 초에 충수염으로 시즌을 마감했으나 타율 .360으로 [[조 디마지오]]에 이어 2위에 올랐고, 35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다.[* 이 해 MVP 3위는 [[밥 펠러]], 4위는 [[테드 윌리엄스]]이었다.] 1940년 폭스는 .297 36홈런 119타점으로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각각 2위와 4위를 기록했다. 폭스는 이 해 9월 24일, 친정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개인통산 500호 홈런을 쳤다. 1941년부터 폭스는 무절제한 생활로 인해 기량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폭스는 타율 .300을 기록 했으나 홈런 수가 19개로 줄어들었고 107타점을 기록하며 뚜렷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프링캠프 때 입은 부상의 후유증 등으로 인해 부진하자 레드삭스는 그를 포기했고, 폭스는 [[시카고 컵스]]로 이적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